2025. 8. 21. 10:00ㆍ전시.산책
익숙함으로 이어진, 나의 디뮤지엄

대림미술관 시절부터 친숙했던 디뮤지엄, 역시 낯설지 않았습니다.
기억 속의 대림미술관은 경복궁 서쪽, 통의동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아담한 미술관이었고,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전시장에서 사진 촬영을 허용한 최초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전시는 눈으로만 아니라 손으로도 담을 수 있는 ‘기록의 대상’이 되었고,
미술을 ‘일상 속으로 들이는 감각’을 처음으로 알려준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억은 시간과 장소를 지나 지금의 디뮤지엄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수동의 산업유산 공간 위에 재탄생한 디뮤지엄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세련된 모습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각만큼은 여전히 익숙하고 따뜻했습니다.


집, 예술의 도구가 되다


<취향가옥 2> 전시는 'Art in Life, Life in Art'라는 부제처럼 예술을 ‘우리 집’이라는 친숙한 공간에 초대합니다. 작품은 벽에 걸린 전시물이 아닌, 소파 옆, 창가의 빛 아래, 선반 위의 사물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예술은 그렇게 ‘삶의 한가운데’에 놓입니다.
패션이 인체를 통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되듯, 이번 전시는 ‘집’이라는 공간을 예술을 담는 가장 솔직한 매개체로 활용합니다. 예술이 꼭 갤러리의 흰 벽 위에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곳에서 예술은, ‘삶과 감상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전시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디뮤지엄의 취향가옥2 ‘Art in Life, Life in Art 2’는 단순한 전시가 아닙니다.
취향이 각기 다른 여러 사람이 한 집에 살며 각자의 공간을 꾸며 놓은 듯한 전시 구성은, 마치 집이라는 일상 공간 안에 스며든 예술의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작품은 벽에 걸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구와 조명, 텍스타일, 오브제들과 어우러진 ‘생활형 전시’**로 이어지며 관람자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끕니다.
이 집은 네 개의 주요 섹션으로 나뉘며, 각 공간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품고 있습니다.
🟫 M2: SPLIT HOUSE – 고요를 채운 거장들의 취향

은은한 베이지와 브라운 톤의 거실 같은 공간.
벽에는 김창렬 작가의 물방울 회화, 이우환의 관계항 시리즈,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뿐만 아니라, 김환기, 박서보라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이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복 형태의 전새나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어, 전통과 현대, 동서양의 시선이 한 곳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고전 명화를 닮은 회화와 사진, 묵직한 가구들이 놓여 있어 마치 조용한 서재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입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싶은 날,
지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이 방에 머물고 싶어 집니다.



🟧 M3: TERRACE HOUSE – 일상의 리추얼을 위한 방

디뮤지엄 취향가옥2전시의 테라스하우스 공간은 반복되는 하루를 ‘의식(ritual)’처럼 되돌아보게 합니다.
올라퍼 엘리아슨, 정유미, 한홍, 엘리사 오지츠 등의 작품이 사람들의 루틴과 습관, 내면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포착해 냅니다. 향기, 질감, 빛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잠시 멈춰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흐릅니다.
조용하고 따뜻한 감성, 꼭 한 번 머물러보고 싶은 방이었어요.






🟪 M4: DUPLEX HOUSE – 레트로 퓨처의 컬러풀한 실험실

디뮤지엄 취향가옥2 전시의 마지막 공간 M4는 시각적 리듬이 가장 강렬하게 흐르는 구역입니다.
김기린 작가의 초록, 파랑, 빨강 삭면 회화가 벽을 따라 빛처럼 퍼지고, 공간 전체가 색채의 파동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감상이 아닌 ‘체험’이 되는 공간입니다.
조형과 설치가 수직적으로 확장되고, 감각과 직관이 우선되는 공간.
M1~M3의 정제된 흐름을 지나, 마침내 감각이 터지는 지점.
색과 구조, 그리고 취향이 자유롭게 춤추는 마지막 공간입니다.

디뮤지엄 취향가옥2 전시 M4 공간의 중앙에는 백남준의 대표 설치작품 ‘사과나무(Apple Tree)’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브라운관 TV 수십 대를 쌓아 만든 이 트리 구조는, 열대식물 사이에서 기술과 자연의 낯선 조우를 만들어냅니다.
백남준 특유의 미디어 철학이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은,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기억될 만한 장면이었습니다.
M4 공간에서는 백남준을 비롯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디지털 화면과 조명 사이를 넘나듭니다.
강렬한 색감, 팝아트적 오브제, 테크놀로지 기반 설치작품들로 가득 차 있어 시각적 몰입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방입니다.
한마디로, 미래에서 온 컬러룸 같은 느낌. M4는 이전 층에 비해 더욱 입체적인 구조와 동선을 갖고 있어 관람자의 시선을 수직으로도 끌어올립니다.
작품들이 벽면뿐 아니라 천장과 바닥을 향해 확장되며, 순간순간 관객을 '중심'이 아닌 '경계'로 이끕니다.
🏡 베이스하우스|수집의 기쁨과 삶의 취향이 교차하는 공간


디뮤지엄의 마지막 섹션인 베이스하우스는 마치 실제 거주 공간처럼 구성되어, 관람객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인상을 줍니다. 방마다 콘셉트가 다르며, 각기 다른 취향의 컬렉터가 실제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무게감 있는 아트북과 작은 디퓨저, 빈티지한 가구, 세련된 조명까지. 이질적일 수 있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삶이 곧 전시가 되는 순간을 연출합니다.

디뮤지엄 취향가옥2 전시의 자동차 모형 컬렉션은 컬렉터 김형국(Andrew Kim) 님의 소장품으로, 그는 40여 년간 수백 개의 희귀한 미니어처 자동차를 수집해 온 국내 대표적 자동차 컬렉터 중 한 명입니다. 실제 차와 동일한 브랜드별 도색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 모형들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디자인과 기술 진보의 축소판으로, ‘시간이 담긴 오브제’로 평가됩니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이 공간이 결코 정돈된 쇼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헝클어진 듯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오히려 관람자는 깊이 공감하고, 자신의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넥타이들은 컬렉터 K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캐릭터 넥타이들로, 매일 아침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나를 골라 착용하며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벽에는 대림미술관 시절부터 이어진 디뮤지엄의 전시 포스터들이 시간의 결처럼 정갈하게 아카이빙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의 사진전을 비롯, 런던의 디자인 스튜디오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 유명 사진작가 닉 나이트 전시, 미디어 아트 그룹 트로이카의 실험적 전시 등등 수많은 전시들의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가장 반가웠던 장면은 2014년 대림미술관에서 열렸던 ‘Linda McCartney Retrospective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전시의 포스터였습니다.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아내인 린다 매카트니는, 일상의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전시를 직접 관람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포스터 한 장이 무척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전시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마주친 이 장면은, 오래된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

디뮤지엄 듀플렉스하우스 로비공간에 들어서면, 중앙 벽면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Imperfect Painting》(1988)이 걸려 있어 단번에 시선을 끕니다. 기하학적 패턴 속에 의도된 비대칭과 불완전함을 담은 이 작품은, 회화의 질서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닥에는 백남준의 대표작《즐거운 인디언》(1995)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네온과 전자 장치를 활용한 그만의 키네틱 아트가 공간을 생동감 있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색채와 조형이 충돌하듯 조화를 이루는 이 장면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경계를 탐색하는 전시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구간이었습니다.
이렇듯 디뮤지엄의 공간들은 작품과 삶, 감성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하나의 큰 집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저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 방과 방 사이를 걸으며 삶의 온도와 정서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전시였어요.





마무리하며
디뮤지엄의 취향가옥2 전시는 말합니다.
예술은 막연히 어렵거나 전시장 안에 갇혀 있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매일 삶을 빚어내는 '집'처럼 우리의 삶 가까이에 놓일 수 있다는 것.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
좋아하는 것들 곁에서 조용히 빛납니다.
익숙한 공간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예술은 삶의 한 장면처럼 스며들어옵니다.
Art in Life, Life in Art.
삶 안의 예술, 예술 안의 삶.
이 전시는 그 경계 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 일상의 결을 따라 말없이 말을 겁니다.
🔗 이번 전시는 '무드온라이프'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디뮤지엄 취향가옥 2 전시|공간이 예술이 되는.. : 네이버블로그
디뮤지엄 취향가옥 2 전시|공간이 예술이 되는 순간
거실에는 그림이 걸려 있고, 부엌에는 오브제가 놓여 있으며, 빛은 창을 넘어 예술을 비추는 조명이 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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