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김환기 뉴욕시대 전시 후기

2025. 7. 19. 10:00전시.산책

오랜만에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바다, 커피, 친구가 있어 늘 좋은 곳인데
이제는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이 있어
더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뉴욕시대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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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립미술관 북카페 지관서가 에서 만난 김환기 에세이

 

지난번 울산 태화복합문화공간 만디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관람을 마치고, 인근의 울산시립미술관과 연결된 북카페 ‘지관서가’에 들렀습니다. 지관서가(知館書家)는 이름 그대로, 책을 중심으로 지혜와 여유가 깃든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전시관과 마주한 카페 앞에는 작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마치 도심 속 정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조용한 분위기와 초록의 풍경이 어우러져, 전시의 여운을 정리하며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북카페의 많은 책들 가운데 우연히 한 권의 책 김환기 에세이『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만났습니다. 
얼마 후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열린 김환기 뉴욕시대 전시를 다녀온 뒤, 책을 구입해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한적한 공간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이후엔 깊은 사유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김환기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먼저 파란 점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 점들은 결코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읽고 나면,
그 점들이 시간과 공간, 철학과 예술을 가로지르며
오랜 사유 끝에 찍힌 ‘삶의 점’이라는 걸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점으로 가득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그의 전면점화 작품은 한국에 두고 온

가족, 친구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낸 것입니다. 

 

 1. 강릉에서 만난 김환기 전시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 대하여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전경 출처:강릉시청 홈페이지
강릉솔올미술관 야경 출처: 강릉시청 홈페이지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낳은 문화예술의 도시, 강릉.
이 도시는 조선의 유산을 지닌 고장이자, 이제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과 건축을 품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솔올’이라는 이름은 강릉의 바다와 솔숲을 상징하며, 문화예술이 뿌리내릴 새로운 공간임을 알립니다.
이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의 철학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공간입니다. 리처드 마이어는 이미 강릉 씨마크호텔을 통해 한국에 잘 알려진 건축가입니다.

주차장에서 입구로 들어가는 진입로
미술관 진입 사인
어디서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뉴욕시대 전시 안내
2층에서 내려다 본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로비, 보이드 void처리로 공간감을 확대시켜준다.
간결한 직선과 무채색으로 마감된 1층 로비


리챠드마이어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새하얀 외벽, 빛을 반사하는 순백의 입면, 그리고 단순하지만 선이 살아 있는 구조미는 이 공간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강릉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도 스스로 중심을 잡는 이 건물은, 배경보다 전시에 집중할 수 있는 '화이트 큐브'의 전형을 구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채색 실내에 들어오는 실외풍경


또한 관람 동선도 탁월하게 구성되어 있어, 전시장 내부에서 외부 자연광이 적절히 차단되고,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실내공간 역시 외부와 같은 분위기의 무채색으로 마감되어 있어 차분하고 유리벽을 통해 들어오는 야외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은 분명 매력 있는 도시, 강릉에서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입니다.

 

 ▍전시 내용 요약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김환기의 뉴욕 시대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면점화 시리즈가 중심이었습니다.
그의 후기 대표작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그의 예술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작품은 촬영이 불가했지만, 기억에 깊이 남은 작품 몇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 시와 그림, 삶이 만나는 대표작.

 

김환기의 뉴욕 후기 점화 양식의 정점인 작품으로 동시대 한국시인 김광섭의 시구절에서 제목을 차용하였습니다.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진 전면점화 화면은 밤하늘과 우주, 존재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습니다.

'봄의 소리' (1966)
'산월' (1958) : 달밤의 풍경을 점화로 재구성한 뉴욕 시대의 걸작.
`우주`(1971). <환기재단>https://v.daum.net/v/20210306150116980 매일경제

나는 아직 달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항아리` (1958) 출처 : 케이옥션


김환기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달항아리입니다. 달항아리 관련 작품은 성북동 시절, 그가 달항아리를 수집하며 느꼈던 깊은 한국미의 자각과 이를 캔버스에 담아내려 했던 이야기들은 그의 작업 전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입니다.


그는 달항아리의 여백과 곡선, 소박한 기품을 사랑했고, 이를 통해 한국적인 정신과 미감을 추상화로 연결해 냈습니다.

> 📌 참고: [전시 내용 보기](https://www.gn.go.kr/mu/selectMoonhwainView.do?pageUnit=8&pageIndex=1&searchCnd=all&key=6614&searchMoon_p_team=gnmu&searchSiteId=mu&searchMoon_p_state=ing&searchMoon_p_kind=gallery&searchMoon_p_idx=5)

 

2. 김환기라는 사람에 대하여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 아니라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는 유화라는 서구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색감, 선, 여백, 질감을 오롯이 담았습니다.
한옥의 처마 곡선, 한지의 투명함, 달항아리의 온기...  이 모든 것은 김환기에게 '캔버스 위의 조국'이었습니다.

'붉은 점화' 출처 : https://v.daum.net/v/20180522033637588 서울신문

 “나는 한국적인 정서를 세계적인 언어로 말하고 싶다.

'새와 달'(1958) 출처 : 케이옥션 제공

 

김환기 화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은 창작이 아니라 모방이다.” 그에게 창작이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정체성을 담은 출발점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정서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는 뿌리였지요.

그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한국적인 것, 우리의 정서와 미감을 창작의 바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그의 작업은 '국적 없는 추상'이 아니라 '한국을 품은 세계'였습니다.

 

 ▍작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사명 – 미술대학에 남긴 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는 ‘미술대학의 사명’이라는 글도 실려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사고의 방향, 공간의 역할, 세계 속 한국미술의 비전까지 폭넓게 제시합니다.
* 대학의 건축은 ‘예술적 사고의 장’이 되어야 하며,
* 커리큘럼은 학생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야 하며,
* 무엇보다 '세계적인 작가가 이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소망을 남깁니다.

그는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 미술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예술교육의 철학, 시설 설계까지 세세하게 조언을 남긴 교육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 속엔 늘 예술에 대한 진심과 책임이 자리합니다.

`판자촌`(1951) 출처 : 환기재단

 

3년간의 부산 피난살이 시절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는 쉬지 않고 작업을 했으며 위의 판자촌 작품에서도 어두움보다는 오히려 익살스러움이 배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낙천가이다."

▍예술의 시간, 세계를 향한 시선

김환기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 말이 떠오릅니다.
“서양은 유화를 500년 넘게 해 왔지만, 우리는 고작 100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흡수했다.
머지않아 우리가 세계 미술의 선두에 설 수 있다.”

 

그 믿음을 품고,
그는 파리로, 뉴욕으로 나아갔고,
그림 속에 한국을 심었습니다.

김환기의 마지막 작품 ‘7-VII-74’. https://v.daum.net/v/20250327103038448 강원도민일보


 ▍김향안이라는 이름, 함께 만든 예술의 여정

김환기와 아내 김향안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조력자였던 김향안.
문학과 예술을 이해했던 그녀는 단지 배우자가 아니라, 작가의 삶을 조율하고 지지했던 동반자였습니다.

그녀는 경기여고와 이화 여전 영문과를 나온 신여성이자 시인 ‘이상’의 아내였던 인물입니다.
이상과의 사별 후, 김환기와 결혼하게 되었고, 당시 전처 사이에 세 딸을 둔 김환기의 삶에 들어와, 그의 예술성과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김환기를 위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김환기라는 이름 뒤엔 늘 김향안이 있었다.”


해외 유학과 전시, 네트워크, 언어의 장벽 등 모든 여정을 함께 건너온 그녀의 존재는,
김환기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숨은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환기는 자신의 호 ‘수화(樹話)’에서 ‘수’를, 원래 자신의 아호였던 ‘향안(香安)’에서 ‘향’을 따 성북동 작업실에 ‘수향산방(樹香山房)’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향안’은 훗날 아내의 이름으로도 불리게 됩니다.

 

▍ 마무리하며 : 가을,  환기를 만나러 가는 길

 

사람은 어느 정점에 이르면 멈추기 마련이지만, 김환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스스로를 주저 없이 넓은 세계로 내던졌습니다.

 

올가을, 부암동 환기미술관으로 그를 다시 만나러 가보려 합니다. 
그림 앞에 앉아, 그의 시간이 남긴 흔적을 조용히 마주하고 싶습니다.

 

🔗 이번 전시의 글은 '무드온라이프'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이어집니다.
👉 김환기 뉴욕시대,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전시 후기 : 네이버 블로그

 

김환기 뉴욕시대, 강릉시립미술관 솔올 전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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